안녕하세요 작년 이맘때쯤 전남 소속 어느 작은 지자체로 붙어 1년 정도 다니고 있는 일행 현직자입니다. 강의도 듣기 귀찮아서 거의 안 듣고 기출문제 위주로만 공부했는데, 당시 공기출 사이트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늦게나마 운영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수험생 시절 절실함 같은 건 1도 없었습니다. 이미 공무원 준비 이전에 도전했던 수많은 것들을 다 실패했고, 모든 걸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의 경우도 안 되면 그만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공부시간도 너무 적었고, 그 외의 생활패턴 역시 수험생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혀 모범적이지 못해서 부모님과의 갈등도 심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 보내다 얼떨결에 붙어서(점수도 심지어... 다소 많이 남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열심히 준비하시는 분들께는 사실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공직과 관련된 그 무언가를 처음 시작했었던 이 사이트에서 문득 그 동안의 1년을 반추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 준비하시는 분들께 현실을 알려드리는 데 보탬이 된다는 식의 그런 구실을 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그런 식의 영향을 좋은 방향으로 드릴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뿌듯할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 푸념 섞인 하소연을 괜히 털어놓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가 시작했던 이 곳이 대나무숲의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욕심 섞인 작은 바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점이라면... 일단 액수는 적지만 월급을 벌고 있습니다. 그 월급으로 소소하게 취미생활도 할 수 있고, 시기가 되면 여행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저축에 대한 압박은 있겠으나, 어쨌든 수험생 때보다 지갑 사정은 나아집니다. 수당이 붙을 경우 더욱 괜찮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집은 광주광역시이고, 인근에 붙어 있는 전남 소속 지자체로 출퇴근 중입니다. 출퇴근은 참 편합니다만... 출퇴근만 편했던 것 같습니다. 일행 지방직 가실 분들의 경우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계셔야 할 것입니다. (다른 지자체는 이런 상황이 아니길 바랍니다만...)
대체로 업무를 가르쳐주면서 하라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본인들도 스스로 가르쳐줄 수 없는 상황에서 왜 해놓지 않냐는 식의 호통과 억지만 난무하는 곳입니다. 문서등록대장과 법규정만 참고하고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감사 떠서 지적사항 나오면 그대로 수긍하고 도장찍고...
면 단위 주무관이 맡고 있는 해당 업무들은 보통 사업소나 센터, 군 담당자들과 연계하여 처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만, 사업소 센터 군 담당자들의 경우 인성이 다소 천차만별입니다. (지금도 몇몇은 쫓아가서 다 그냥 패버릴까 고민하고 있기도...)
직원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됩니다. 적극적으로 어울리려 해야 그나마 중간은 갑니다. 다소 낯가림 있고 수줍음 있으신 분들의 경우에 심한 상황을 겪기 좋습니다. 도시 정서 같은 게 몸에 배어 있으신 분들은 타겟이 되기 십상입니다.
지방직 특유의 토착문화 같은 게 있어서 도시생활하셨던 분들의 경우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실 것입니다. 기관단체장이나 이장님들의 초대가 있을 경우 암묵적으로 모두 참여해야 하는 상황 같은 게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장협의회장이 저녁 식사를 초대하고 싶다고 하여 거의 전직원이 밤10시까지 술자리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이장 야유회 같은 걸로 주말에 직원들 불러내어 굴리는 것도 빈번합니다. 이장 하나가 점심 식사에 직원들을 초대한다면 ... 모두 가야 합니다.
인력난이 심합니다. 이 말인즉슨 한 사람이 맡아야 하는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대충대충 끝내놓고 심각한 것들만 땜빵하는 식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만, 제대로 처리하자면 퇴근이 불가합니다... (심지어 최근의 태풍처럼 자연재해가 터지면 다른 모든 업무가 마비됩니다.) 인력난으로 인한 상황이기도 합니다만, 연가나 대체휴무의 경우 굉장한 눈치를 줍니다. 특히 연가의 경우 더욱 눈치가 심합니다.
배려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제 경우 지병이 심한 편이어서 미리 어필하고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그런 어필 자체를 두고 꾀병처럼 보는 시선이 참 억울하더군요. (그렇다고 일을 덜한 것도 아니었고...) 응급실을 자주 다니고 있고 병이 재발하고 있어 고민입니다.
인사 관련해서는 대체로 돌아가는 판이 다 엉망입니다. 제 옆직원이 전출 가게 됐는데 상식적으로 이 쪽 인사시즌에 맞추어 직원을 보내는 게 맞겠습니다만, 그 쪽에 사람 비었다고 미리 보내놓고 이 쪽에서는 알아서 버텨라는 식으로 나오더군요. 어지간한 건 다 참아왔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총무과에 전화해서 사직서 내겠다고 절차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다음날 긴급자금배정으로 기간제 근로자 보수 늘려서 보강해주는...
1년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그 수많은 일들을 몇 글자로 정리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들만 몇 개 추려서 써봤습니다. 장단점을 비교적 동등한 비중으로 써보려 했으나 도저히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공무원 수험생활 자체는 길지 않았으나, 이런 저런 시험으로 20대 전체를 수험생으로 보냈기 때문에 공부 자체에 질려 있어 그냥 출퇴근하고 다니고는 있습니다. 어찌저찌해서 주변의 만류나 다독임으로 참고 다니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오래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장문의 글을 오랜만에 써봐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지 좀 애매한데, 이 글에 목적 자체가 희박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어딘가에 한번쯤 털어놓고 싶었던 말들입니다. 애로사항 같은 거 아무리 토로해봐야 공감을 잘 못 사더군요. '에이 그래도 공무원인데' 같은 시선이나 받고 사니...
어쨌건 현직에 계신 분들(특히 읍면단위 산업계 분들ㅜ) 수험생 분들 모두 저와 같은 상황은 겪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각자가 원하는 바를 꼭 이루셨으면 합니다.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중앙은 중앙대로 바쁘다고 들었는데 지방도 마찬가지로 힘들고 문화도 개차반이네여 ㅠㅠ
개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